소변검사하러 갔다가 발견한 역사의 흔적

오스트리아 와서 자전거 낙상사고를 당하고

별의별 사진을 찍고 검사를 하며 다양한 병원을 다녔던 지난 3개월입니다.

남편이 농담으로 의사들 많이 만나서 좋겠다고 놀립니다.

그래, 뭐 나쁠 건 없었지... 그러면서 병원 독일어도 배우고 독일말도 연습하고 말입니다.. ^^ (긍정 긍정)

 

관련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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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상사고, 골밀도측정. 30세에 벌써 골감소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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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독일 보험으로 응급실 (병원) 가기

소변검사를 하는 Labor 앞.

 

저의 담당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이 골밀도 측정 검사와 더불어 소변검사까지 하라는 의사소견서를 써주셨습니다.

 

24시간 동안 소변을 모아서 제출해야 하는 소변검사 Harnsammlung.

이런 대대적인 (!) 소변검사는 난생처음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제 몸에 대해 알까 싶어서 열심히 소변을 하루 동안 모았습니다.

 

해외 나와서 아프면 한국에서 아플 때보다 서러우니까요...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하는 게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하루 동안 모은 제 소변은... 음.. 양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그 무거운 소변병을 들고 집에서 좀 떨어진 실험실 Labor에 도착했습니다.

독일에서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오스트리아에서는 Labor라고 여기서 소변검사도 하고 피검사도 합니다.

 

 

번호를 뽑고 대기하고 있다가 제 번호가 불려서 창구에 갔습니다.

 

일단 소변통부터 반납하고... 갑자기 "의사소견서는 어딨어?"라고 묻는 간호사.

아 맞다!!!

제일 중요한 걸 집에 놓고 오다니.. 이렇게 덜렁대는 저입니다. 

 

다시 무거운 소변통을 들고 집에 갔다 오기는 싫고... 소변통을 잠깐만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늘 안에 다시 안 오면 이 소변은 버릴 거야!" 

 

...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간호사님...

근데 정말 다시 모으고 싶지는 않습니다. ㅜ

 

 

마침 남편이 집에 있어서 소견서 좀 집에서 찾아서 여기에 배달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금 커피 마시면서 아침을 느긋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와도 돼~ 소변통 무겁단 말이야~~

 

투덜대지만 알겠다고 기다리라는 남편입니다. :) 

 

 

저는 실험실내 대기하는 환자들을 위한 곳에서 기다리고.. 

집에서 자전거 타면 5분이면 오는 거리를 30분 걸려서 남편이 도착했습니다. 

아침 먹다가 늦은 건 아니고 길을 잘못 들었다는 남편.

덜렁대는 게 누구 남편 아니랄까 봐... 

 

다행히 소견서는 안 까먹었습니다!

 

저는 실험실로 들어가려 하고 남편은 다시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한 남편.

 

이것 좀 봐!

 

아래 사진과 같은 타일을 바닥에서 발견했습니다.

 

 

 

 

이 실험실의 건물은 옛날에 36명의 유대인 사람들이 살았던 공동 아파트였고

나치가 이들을 해방시켰을 땐, 단 한 명만이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내용의 글이 담겨있는 기념비 같은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실험실 건물 앞에 유대인 어린이 몇 명이 지나갔던 게 떠올랐습니다.

유대교 전통 의상인 "키파"를 다들 쓰고 있어서 유대인임을 알 수 있었죠.

 

 

 

키파를 쓴 아이들. 사진출처: dw.com

 

이 아이들이 2차 세계 대전 중에 태어났다면... 그 비극을 피할 수 없었겠지요.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유태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다닐 수 있다는 게 이들에겐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잔인했던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작지만 이렇게라도 흔적을 남겨놓은 것에 새삼 그 무게가 느껴집니다.

 

오스트리아는 모르겠지만 독일에는 유대인들을 위한 체류허가도 있다고 하니,

역사를 이렇게라도 만회하려는 자세가 훌륭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상에서도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비엔나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알트 바우 Altbau에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살다 간 역사가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