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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생활

[임신 38주 6일차] 이슬 비침 그리고 내 생일에 출산

by 비엔나댁 소아레 2024.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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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배가 쥐어짜듯이 아파서 순간적으로 핸드폰 켜고 진통앱에 기록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다시 잠들었다. 38주 들어서면서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꼭 한 번씩 가게 된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통잠을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날 땐 항상 갈비뼈가 아파서 더 누워서 못 자겠어서 일어나게 된다. 

오늘도 새벽에 화장실 한 번 갔다오고, 갈비뼈 통증 때문에 아침 일찍 기상. 아기가 많이 내려와서 방광이 더 눌리는지 화장실도 더 자주 간다.

 

오후에 화장실 갔는데 살짝 혈흔이 보였다. 이웃집 친구랑 밖에 잠깐 산책 갔는데 평소보다 아랫배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장실 갔는데 이번엔 아주 걸쭉한 점액에 피가 살짝 섞여 나왔다. 그러고 뭔가 심상치 않은 거 같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게 바로 이슬 비침인가 보다. 이슬 비침 있고 보통 다음날에 많이 출산하시는 거 같은데.. 갑자기 그걸 읽고 나서 그런지 몰라도 배가 더 무겁고 살살 아파오는 느낌이다. 

그래도 태동은 아직 좀 있는데... 남편은 모레 연주가 있어서 만약에 그 전에 병원 가야 되면 어떡하지? 나는 남편이 출산할 때 곁에 있어주길 바랐는데 ㅜ ㅜ...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니 걱정만 생기는 거 같아서 좀 딴 데 정신을 쏟고 싶어서 블로그에 기록하는 중.  


 

여기까지 쓰고 갑자기 배가 생리통처럼 살살 아파오기 시작해서 진통앱에 기록하기 시작. 벌써부터 진통간격이 10분이었다 5분이었다 하는걸 보니 분만이 임박한 게 분명했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증상을 말하고 응급차를 불러야 하냐고 물었더니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그냥 차를 타고 와도 된다고 했다. 방금 남편이 맛있는 카레 요리했는데 ㅜㅜ 한 두 숟가락 먹고 부랴부랴 짐을 싸고 우버를 불렀다. 집을 나가는 길에도 진통은 계속되어서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택시 안에서 계속 호흡하고.. 택시기사가 급하다는 걸 알고 속력을 내주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분만실 쪽으로 가자 조산사가 내가 좀아까 통화한 임산부가 맞는지 확인후 분만실로 데려갔다. CTG로 아기의 심장소리부터 확인... 그리고 자궁문을 확인하는데 이미 3cm가 열려있는 상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산모들이 보통 너무 일찍 병원에 도착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딱 맞는 타이밍에 도착한 듯... 

 

분만실에 짐볼이 마련되어 있어서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짐볼을 안고 엎드려서 호흡을 했다. 남편이 옆에서 계속 같이 호흡해 주고, 허리도 눌러주고 해서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이 진통 간격이 더 짧고 세지는 게 느껴졌다. ㅠ 조산사가 욕조에 들어가고 싶냐고 물어봐서 하겠다고 하고 조산사는 물을 준비하러 나갔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한지 한 시간쯤 됐나? 진통이 참을 수 없이 심해져서 조산사를 불러서 자궁문을 체크했더니 5cm가 열렸다. 조산사가 PDA (무통 주사)를 맞을 건지 물어봤다. 무통주사나 욕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자기가 봤을 땐 지금이 딱 무통 주사 맞기 좋은 때라고 했다. 그녀의 의견에 따라 바로 무통 주사 맞는 걸로... (그 와중에 욕조 받아놓은 물이 아깝다고 생각함 ㅜ ) 마취 의사가 들어왔는데 내가 신음하면서 너무 아파하는 걸 보고 자궁문이 얼마나 열렸길래 그러냐고 조산사에게 물었다. 아마 내가 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엄살 부리는 거라 생각한 듯 ;;

아무튼 마취 의사가 주사를 내 허리에 놔주고 곧 괜찮아질거라고 나를 달래주었다. 조산사는 이따가 항문 쪽에 화장실 가고 싶은 느낌이 아주 크게 느껴지면(!) 아기가 나올 때가 된 것이니 준비하라고 했다. 

 

나도 드디어 무통 천국이라는 걸 맛보고, 잘하면 무통 천국 속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잠시.. 무통 주사를 정말 맞았나 싶을 정도로 계속 아파오고, 아까 말했던 큰 변을 볼 것 같은 느낌이 이거다 싶어서 조산사를 불러서 또 자궁문을 체크했더니 이제는 양수가 터지고 자궁문이 거의 다 열려서 힘주기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래, 유튜브에서 배운대로 하는 거야!

 

빠른 진행 속도에 자신감이 붙었다. 우리 엄마도 나 낳을 때 30분 만에 낳았다고 했으니 나도 순산할 거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근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아기 머리 크기. 의사 선생님이 마지막 진료 때도 아기가 머리가 좀 큰 편이라고 했었는데, 그 크기가 한국에서는 번번이 있는 일이고, 그래도 자연분만해서 낳을 수 있다고 들었다. 근데 머리가 큰데 비해 내 골반이 좁은 건지 아기가 잘 나오지를 못했다. 

 

조산사의 지시대로 일반 아기 낳는 자세, 옆으로도 해보고, 남편은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같이 호흡하고 힘줄 때 내 몸을 C자로 꺾는 거 도와주고 ㅋㅋ 근데 한 시간가량 매 1-2분마다 힘을 한껏 주는데도 아기가 쉽게 나오지를 못했다. 머리는 보이는데 ㅜㅜ 

 

처음에 힘주는데 자꾸 대변만 조금씩 나와서 조산사가 계속 밑에 패드 갈아주고... 집에서 출발하기 전 볼일 잘 보고 와서 관장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출산 전에 자동적으로 부드러운 변이 나옴) 와서 할 걸 그랬다 싶었다.. 근데 여기서는 한국처럼 관장과 제모가 머스트가 아니고 선택이라, 내가 대변볼 때마다 조산사에게 미안하다고 하니 조산사는 전혀 미안할 게 아니라며 덤덤해했다.

 

아무튼 한 시간 내내 조산사와 남편과 함께 끙끙대며 힘을 주는대도 진척이 안 생기자 결국 의사 선생님을 불러서 의사 선생님이 내 배까지 밀며 같이 힘을 주었다. 안 그래도 배가 너무 아픈데 거기까지 배를 누르니 너무너무너무 아팠다...ㅜㅜ 나중엔 그냥 제왕절개 하면 안 되냐고 울부짖었다...

의사 선생님도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조산사와 은밀한 대화를 나누더니 뭔가를 가져오고 다른 시도를 하려는 게 느껴졌다. 보이진 않았지만 느낌적으로 뚫어뻥 같은 것으로 아기 머리를 잡아 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진공 도우미?를 장착하고 다시 같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밑에 뭔가 꽉 낀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한 두세 번 힘을 주니 그게 딱 빠진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아기가 나왔다!!!

 

 

 

아기가 나오니 드디어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기를 바로 품 안에 안겨주었는데, 너무 기운이 빠져서 아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일단 아이가 건강하게 나온 걸 보고 안도... 내 몸은 마취 때문인지, 무시무시한 진통을 겪고 난 후의 트라우마인지 덜덜 떨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회음부를 꿰매 주시는데 바늘의 고통이 다 느껴짐 ㅜㅜ 내 생각엔 분만 진행이 너무 빨라서 무통의 효과를 거의 못 본 거 같다.. 이게 그나마 효과를 본 거라면 실제 100% 고통은 진짜 어마무시할 듯...

 

조산사가 나의 빠른 진행 속도에 놀랐는지, 임신했을 때 Akupunktur (침술)을 받았는지 물어보았다. ㅋㅋㅋ 그런 건 안 하고 요가와 산책을 열심히 했다고 했다. 근데 진짜 그게 아기를 빨리 내려오게 하는데 제일 큰 역할을 한 거 같다. 짐볼도 그렇고! 

 

 

아기의 몸무게와 키 등을 재는 간단한 점검을 하고, 아기는 다시 내 품에 안겨져서 Bonding Time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조산사가 바로 젖을 물려주었다. 당연히 처음이라 잘 되지 않았지만, 조산사가 계속 억지로 아기 머리를 내 가슴에 갖다 대었다. 이렇게까지 억지로 해야 되나 싶었는데, 그렇게 해야 젖도 빨리 돌고 하는 모양이다. 

 


 

난생처음 겪는 출산을 다른 나라에서 해냈다. 그것도 자연분만으로..! 진짜 나 자신이 장하게 느껴졌다. 진통을 겪을 때가 내 생일 전 늦은 저녁이고 곧 다음날이 되기 전이라, 아기가 내 생일 전날에 태어나냐 내 생일에 태어나냐가 남편과 조산사의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진통을 겪고 있는 나에겐 그런 특별한 거 필요 없으니 그냥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ㅜㅋㅋ 그래도 엄마 힘들지 않게, 열두 시 지나고 30분쯤 지났을 무렵 나와주어서 고마웠다. 이런 크나큰 생일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나왔는데, 그게 저녁때라 다행히 남편이 집에 있어서 다행이고, 남편이 분만 과정 내내 옆에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물론 나의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게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하기도 하다.^^;; 

 

 

분만할 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남편과 힘주기 연습을 좀 더 자주 해볼걸. 내쉬는 호흡할 때 남편이 내 머리를 가슴 쪽으로 밀어주면 훨씬 수월한데, 서로의 합이 완전히 맞지가 않았다. 나중에는 남편이 도와주는 게 걸리적거려서 그냥 내가 혼자 다리 붙잡고 힘을 줌 ㅠ 조산사 Hebamme 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연히 프로페셔널하게 내 분만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었지만, 막판에 힘주기 할 때 서로 합이 좀 안 맞는단 느낌이 들었다.

 

도움이 많이 됐던 맘똑티브이님의 유튭 영상

 

 

가정 분만을 한 이웃집에서 조언해 주길, 의사보다 헤바메가 중요하다 했는데 그걸 절실히 느꼈다. 헵아메야말로 분만 과정의 90%를 함께하고 의사는 정말 마지막에 힘주기 할때나 오기 때문에, 나와 교감하고 잘 맞는 헵아메가 있다면 힘든 분만 과정이 조금은 더 위로가 되고 안정을 느낄 거 같다. 돈이 좀 더 들더라도 지정 헤바메를 할 걸 그랬나 싶은 부분이었다. 물론 분만 의사도 중요하긴 하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출산하는 본인이 분만 과정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거 같다. 미리 공부해도 이론과 실전은 다른데...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준비를 해놓는 게 엄마가 되는 첫걸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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