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고 간소하게 준비한 결혼식이니만큼
신혼여행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제안한 캠핑 허니문.
초등학교 때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했던 게
마지막 기억인데 괜찮을까 싶었다.;;
그래도 이때아니면 언제 핀란드에서
캠핑해볼까 싶어 오케이!!
우리의 동사무소 웨딩(!) 을 끝내고
집에서 캠핑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기고
다시 증인을 서준 친구 부부가
차로 데리러 와서 캠핑장으로 출발~
우리는 우리가 밤에 잘 때 입을 따뜻한 옷과 케이크만 준비하고
친구 부부가 우리가 잘 텐트랑 먹을 것을 준비하기로 했었다.
우리가 잘 텐트에, 대충 돗자리깔고
그릴 해서 먹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캠핑 장소에 도착하니
갑자기 흘러나오는 결혼행진곡?
뭔가 서프라이즈의 분위기가...ㅎㅎ
조금 더 들어가 보니 텐트 두 대가 서있었다.
하나는 파티를 위한 큰 텐트와
다른 하나는 우리의 신혼 밤을 위한 텐트!
안에 음식들도 이미 차려져있고,
친구 부부의 아들이 혼자 외로이 그릴 불을 지키고 있었다. ^^
정말 생각도 못했던거라 감동, 고마움,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자연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을 생각에
이 복장으로 집에서 왔다.
소나무와 호수를 배경으로 하니 은근히 한국 분위기도 나고~~
추울까봐 걱정했는데 안에 레깅스 입고 위에
후드 하나 입으니 그닥 춥지 않았다.
춥지도 않은데 왜 우리의 표정은 굳어 있는거니... ^^;
괜찮은 사진 몇 장 건졌지만
그래도 나중에 한국가서 제대로 된 웨딩사진은 찍고 싶다.
이 날 그릴 담당이었던 아빠와 아들.
14살 밖에 안됐는데 내 남편보다 키가 크다;;
이 나이면 우리나라에선 중2병이라며
애들이 사춘기에 말도 안 듣고 엇나갈 때 아닌가
근데 너무 순둥이... ㅜㅜ
착하게 말도 없이 그릴 앞을 지켰다.
그래도 애는 애인지 시간이 늦으니까 피곤하다며
우리 텐트에서 취침하심...
그리고 우리 텐트에서 방구를 엄청나게 뀌어놓았다...
스시, 훈제연어 그리고 내가 준비한 케이크와 커피까지
배부르게 먹고
캠핑에 빠질 수 없는 라이브 뮤직 타임! 🎤
남편이 친구가 가져온 통기타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갑자기 시작된 익숙한 코드와 노래.
엘비스 프리슬리의 Can't help falling in love....❤️
원래 기타를 좀 칠 줄 알아서 그냥 자기가 아는 곡 치나 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날 위한 세레나데(!)를 며칠 동안 준비했던 것!!
결혼식 진짜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하더니
뒤에서 나름 신경쓰고 있었던 남편.
기타 코드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새 코드가 나올 때마다
강제 쉼표 ㅋㅋ
그래도 그 서투른 모습이 왠지 더 예뻐 보였다. :)
내 남편 다음 타자는 친구 부부의 딸!
취미로 기타 치고 노래한다는 건 알았는데
수준이 상당해서 깜짝 놀람!!
직접 러시아어로 작사 작곡한 노래도 불렀다.
딸도 너무 착하고 영어도 잘하고~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알리스의 노래~
너무 많은 선물을 받은 하루였다.
참 좋은 가족들과 인연이 돼서 기쁘고 감사하다.
*
남편 친구 부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이들은 핀란드에 이주해온 러시아 사람들이다.
이 부부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가족들의 도움 일절 없이 정말 0에서 시작했다.
(이른 결혼이니만큼 집안의 반대가 있었던 거 같다... )
러시아에서 아주 작은 단칸방에 살며 남편은 음악 공부,
부인은 미술공부를 하고,
남편의 유학을 위해 스위스, 독일에서 살기도 했었다.
어린아이들 두 명을 데리고
독일 뮌헨에서 살 적엔 워낙 비싼 집값에
남편은 길거리 음악 연주를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서 하루 종일 서서 연주해서 번 돈으로
유명한 선생님의 렛슨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남편과 이 친구가 하는 악기는 바순 Bassoon이라는
악기로, 몇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 하는 고가의 악기이다.
고가의 좋은 악기를 살 형편이 안되었던 이 친구는
거의 아마추어 수준의 악기로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여러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가
결국에 핀란드 오케스트라에 직장을 잡게 되었다.
부인도 정말 대단한 게,
남편 때문에 독일에 가서 독일어 배우고
핀란드 와서 다시 핀란드어를 배우고
몇 년간의 직업학교를 거쳐, 지금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작은 미술학원을 차려 핀란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참고로 핀란드어는 전 세계 언어 중에
배우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다.
30 정도의 결코 이른 나이가 아님에 시작해서
지금은 그 언어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니 존경스럽다.
아이들도 부모 때문에 여러 나라를 거쳐 이사해야 했고,
지금이야 괜찮지만 어린 시절이 분명 넉넉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잠깐 독일 유치원에 다녔다는 큰 딸.
집에서 러시아어 쓰다가
갑자기 독일 유치원 가서 독일어 배우고
갑자기 핀란드 가서 핀란드어 배우느라 힘들지 않았냐니까
오히려 어려서 괜찮았던 거 같다며 쿨하게 말한다.
북유럽 하면 같은 유럽 사람들도
날씨 때문에 사는 건 좀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같은 추운 나라에서 온 이들 가족에게는 문제가 안 되는 것 같다.
오히려 핀란드의 좋은 학교 시스템과 복지에 만족하고 감사해하며 살고 있다.
독일에서도 종종 만났던 러시아 사람들.
다들 생활력, 정신력들이 대단한 거 같다.
그렇지만 인간적이고 따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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