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남편에게 전화가 잦으신 시부모님. 우리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로 택배를 보내주시려는데 어떤 걸 받고 싶은지 물어보신다. 사실 필요한 게 딱히 없는데 괜히 택배 싸느라 고생만 하시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물어보시니까, 나는 초콜릿이랑 부블릭(가운데 구멍이 뚫린 러시아식 건빵)을 원한다고 했다. 나는 주신다는 거 절대 사양하지 않는 며느리 ㅎㅎ 그래도 이런 간식거리는 가벼우니까.
그리고 까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택배가 도착함! 외출했다 저녁에 돌아오니 남편이 이미 박스의 물건들을 꺼내서 정리해놔서, 곳곳에 숨겨진 물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하는 보물찾기 :)
역시나 시부모님 택배에서 빠지지 않는 간식거리 = 우리의 뱃살 주범들 ㅜㅜ 우리나라의 건빵과 같이 딱딱하고 속에 든 것 없는 과자 부블릭, 집에서 직접 만든 꿀, 호두, 말린 자두 그리고 고급진 과일맛 초콜릿들. 연두색의 배맛 초콜릿은 정말 독특하면서 맛있다!
양배추, 파프리카, 당근, 오이... 각종 야채 절임들. 두 분 다 일하시는데 이런걸 언제 집에서 다 만드시는지... 참 부지런하시다!!
특히 이 만두처럼 만든 피클 맛이 너무 좋다. 양배추잎을 피 삼아서 안에 당근과 다른 야채들로 속을 채워 넣었다. 어떻게 속이 안 빠지게 잘 만드셨는지 신기하다. 남편은 이걸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서 구워 먹던데, 그렇게 하니 군만두 같은 느낌에 양배추가 더 아삭아삭하다. 역시 튀기면 뭐든 맛있다더니...
시부모님 택배의 묘미는 이 병들이 어디에서 왔는가이다. 보통 러시아어나 루마니아어들이 많이 쓰여져있지만 가끔 다른 나라의 언어들이 보여 신기하다. 가령 저 위의 양배추 절임이 든 통에는 아랍어가 쓰여있질 않나, 아니면 위의 알로에 베라티에 자세히 보면 '올그루 알로에차'라고 한국어로 써져있지 않나. ;; 알로에 베라티 병에는 감자칩 같은 거 찍어먹기 좋은 새콤한 칠리소스가, 그 옆에는 어린 호두 열매 절임 그리고 맨 앞에는 장미 잼이다. 장미꽃 향기가 아주 매력적인 맛인데, 저건 사실 저번에 보내주신 거라 오래되어서 맛이 좀 변했다. 장미 잼은 빨리 먹는 걸로...
이탈리아 파네토네 빵과 유럽모과라고 불리는 마르멜로 과일. 저 빵은 내 생일인걸 염두하시고 보낸 것 같다. 내일 아침은 저것으로 해결하면 되겠군! ㅎㅎ 저 마르멜로는 처음 봤는데 왠지 모과가 아닐까 싶어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모과와 비슷한 과일이었다. 모과처럼 그냥 먹지 않고 잼으로 만들거나 차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고 한다. 향이 너무 좋은 게 빨리 차로 만들어서 마셔보고 싶다!
택배의 하이라이트, 그 유명한 몰도바산 와인!! 깨지거나 샐까봐 꼼꼼하게 랩으로 포장하신 정성... 그리고 맨 오른쪽은 시아버지가 직접 담그신 화이트 와인이다. 화이트와인치고 색이 너무 진한데.. 로제인가..?;; 파는 것처럼 잘 밀봉된 게 아니라서 빨리 마셔야 한다.
뭐 또 없나하고 집안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거실에 있는 종이봉투 발견! 느낌이 뭔가 내 것이었다. 열어보니 들어있는 인디핑크색의 스웨터 조끼와 진주알 머리핀. 사실 저 스웨터는 영상통화로 미리 봐서 알고 있었다. 나 몰래 남편에게만 어떠냐고 보여주시려다가 나한테 딱 걸린.. ㅋㅋ 남편은 좀 촌스럽지 않냐고 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색도 예쁘고 귀여웠다. 저런 소녀 같은 머리핀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알고 센스 있게 보내주신 시어머니~~
조끼 착용하고 머리핀 꽂아보고 오래간만에 셀카도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며 나 이뻐? 같은 뻔한 짓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부모님께 걸려온 영상통화! 나한테 전화를 직접 거시는 일이 거의 없어서 깜짝 놀랐다. 택배 잘 받았는지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셨던 모양이었다. 바로 입고 있는 거 보여드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남편이 없는 탓에 번역기를 돌려가며 짧은 루마니아어로 소통... 시어머니도 짧은 영어로 "저번에 남편이 사준 목폴라 있잖아~~"라며 뭔가 말씀하시려는 것 같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러 가지를 유추해보다가 저번에 보신 내 분홍색 목폴라에다가 이 조끼를 입어보라는 말씀 같았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니 지금 네가 이해했는지 당장 보고 싶다고 하셔서 급히 환복 ㅋㅋ 알고 보니 그냥 뜬금없이 분홍색 스웨터 조끼를 사신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옷에 어울리는 옷을 선물하고 싶으셨던 것! 그걸 알고 나니 그 세심함에 더 감사했다.
해가 갈수록 나조차도 무신경해지는 생일인데, 타국에서 나를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가족이 있다는게 뭔가 뭉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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