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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생활

오스트리아 교수님의 이유있는 무관심

by 비엔나댁 소아레 2021.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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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제가 다니고 있는 빈 시립음대에서 교수법을 청강했어요.

이제까지 연주법만 배웠지 교육학, 교수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거든요.

교수법 담당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청강을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지난 학기, 제가 들은 타악기 교수법에는 학생이 많이 없었어요. 

선생님까지 다 합쳐서 네 명. ^^;

오히려 그런 작은 그룹으로 수업 듣는 게 집중도 잘되고

선생님이 학생 한명한명에게 신경 써주시는 게 좋았죠.

 

코로나 바이러스 규제때문에 이제까지 온라인 수업만 하다가

드디어 대면 수업! 

학생들을 가르치는 실습을 해봐야 하는데,

그것까지 온라인으로 하는 건 무리였거든요. 

결국 마스크를 쓰고 학생들끼리 서로가 실습대상이 되어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한 명씩 가상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 마지막에 선생님과 학생 모두가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출처: wien.orf.at 

 

 

다른 친구의 수업 내용중에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장 3도인데 (음정 간격)

그걸 응용해서 학생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교수님이 실생활을 예로 든 걸 칭찬하시면서 

갑자기 저에게 "한국의 앰뷸런스 사이렌은 음정 간격이 어떠니?" 물으시는데

너무 갑작스런 질문이라 생각도 안 나고... 그냥 잘 모르겠다고 했죠.

 

그러자 교수님은 "아이고, 사실 이런 걸 내가 물어보면 안 되는데!

뉴스에서 들었는데, 이민자 사회 통합을 위해 선생이 학생들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건 삼가야 한대.

예를 들면, 너희 집에서는 어떻니? 이런 질문 말이야."

 

듣고 보니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있는데,

너무 자주 한국에 대한 걸 물어보면 좀 불편하긴 하지!"

 

"너도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가 모두 조심해야겠구나!" 

 

 

수업 중에 짧은 대화였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주제였습니다. 

 

또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지적 중에 '사투리'가 있습니다.

이건 저 말고 다른 나머지 두 학생에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비엔나 사투리, 다른 한 명은 티롤 Tirol 사투리를 

꽤 심하게 쓰거든요. 

저는 처음에 그들이 하는 간단한 말도 잘 못 알아들어서 멘붕이 왔었죠...

 

교수님이 그 아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가르치게 될 아이들 중에 이민자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너무 심한 사투리는 자제해라!"입니다.

오히려 외국인인 제가 쓰는 독일어가 낫다고 하실 정도니

같은 오스트리아인이 듣기에도 사투리가 심하긴 한가 봅니다. 

 

 

출처: https://www.caritas-rheine.de

 

돌이켜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 교수님은 저한테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저의 담당 교수님만 해도, 한국은 코로나 상황이 어떤지, 아니면 

한국 음식을 좋아하셔서 한식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으시는 편인데

이 교수님은 한국에 대해 물어본 적이 거의 없으셨죠.

딱 한 번 있었는데, 한국에서 쓰는 음악교재가 어떠냐 이 정도였죠.

그것도 갑자기 물으신 게 아니라, 대화의 흐름상 자연스럽게 물어보신 거였어요.

 

아무래도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 혼자 한국인일 때면

자연스럽게 한국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한국의 인구수부터 정치상황(남북문제)까지... 

제가 무슨 한국의 대표인 양 설명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어요.

 

가끔은 괜찮지만, 너무 자주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불편할 때가 분명 있어요.

저도 이제 여기에 남편이 있고 여기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한국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건, "나는 너를 외국인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아!"

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아니면 나랑 할 얘기가 이것밖에 없는 걸까 싶죠. 

 

저조차 이런데, 여기서 태어난 2세들은 어떨까 싶습니다.

 

안 그래도 남들과 다른 외모라 눈에 띄는데,

나는 다른 아이들과 같지 않다고 느껴지면 

아이들은 정체성에 혼란이 올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교수법 교수님이 정말 세심하게 배려하신다는 걸 느꼈어요. 

 

외국사람이 서툰 한국말을 시도한다거나, 한국에 대해 관심 가져주면 참 좋은 일이죠.

그렇지만 뭐든지 적당히, 지나치지 않는 선이 제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이민자들을 너무 외국인 취급하지 않았는지

그냥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배려 없는 질문을 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앞으로 여기서 만날 이민자 혹은

그들의 2세를 만날때도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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