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발표된 남편의 수습기간 (프로베짜잇 Probezeit) 통과 여부. 그 어려운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1년이라는 수습기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종신단원이 될 수 있어요. 지휘자, 악장, 그리고 오케스트라 각 파트의 수석들이 결정하는 수습기간의 통과 여부. 보통 수습기간은 1년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부득이하게 적은 일을 하게 되어 수습기간이 약 3개월 정도 연장되었습니다.
남편의 통과여부는 앞으로 우리의 삶을 결정짓게 되는 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통과되면 계속 오스트리아 빈에 남게 되고, 통과가 되지 못하면 남편의 전 직장이 있는 핀란드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정말 다행인 것은 이 통과 여부로 인해 실업자가 되는 게 아니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하지만 저는 또 핀란드라는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고 새 언어도 배워야 하죠.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 그래도 우리는 부부인데 어떡하나요, 함께 가야지... 안되더라도 결과를 받아들여야지 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어요.
사실 잘될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어요. 그런데 만장일치로 통과라니?
찬성표가 조금 더 많아서 통과해도 감지덕지인데, 만장일치라... 남편이 얼마나 열심히 했고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네요.
발표날 갑자기 오케스트라로 오라는 남편. 모두들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주인공은 남편인데 왜 나를 기다리지? ^^;;;
그래도 남편이 부르니까 가서 축하해줘야죠. ㅎㅎ
가보니까 연습실에 6~7명 정도 모여서 작은 축하파티를 하고 있었어요.
아니 이렇게 모여서 파티를 해도 되나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다들 아침에 코로나 테스트를 받아서 안심해도 된다고...
저도 그날 테스트 음성결과를 받았기 때문에 괜찮겠다 싶었어요.
다들 저를 반겨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남편의 동료 M은 남편이 같이 술 마시고 필름 끊긴 자기를 집까지 안전하게 택시태워 보낸걸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그걸 남편 심사 평가하는 자리에선 이야기하지 않고, 남편의 연주 프레이징이 좋다는 얘기만 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ㅋㅋ
다른 동료 C는 연습실에 있는 커피 머신을 가리키며, 남편이 사다 놓은 커피 머신이 자신의 최애 아이템이라며...
하지만 자신도 이것 때문에 남편에게 찬성표를 준건 아니라고 하네요. 다들 짓궂기는.. ^^;;
다들 장난으로 말하기는 해도, 역시 여기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을 신경쓸 줄 아는 모습을 높이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역시 남편이 일(연주)을 잘했기 때문에 이런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된 거지, 일 못하는데 이런 것만 잘한다고 되진 않겠죠? ㅎㅎ
남편의 동료 M은 저에게 진지하게 자신의 파트너랑 함께 저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남편 하나만 보고 오스트리아까지 왔는데 이게 안되면 핀란드로 또 남편 따라 간다고? 안돼, ㅇㅇㅇ은 여기 있어야 해~~ 라고 했다는... 개인주의인 이 곳 사람들이 봤을때 독일에서 남편 따라 오스트리아로 온 제가 참 대단해 보였나 봐요. 제 걱정까지 해주었다는 게 참 고마웠어요. 아니면 내가 몇 번 해간 불고기와 김치 때문일수도..? ㅎㅎ
다른 동료 C도 저의 내조(?)를 높게 평가해주었어요. 특히나 C는 남편이 자기와 비슷한 상황이라 더 많이 마음을 써 준 것 같아요. 본인과 같은 외국인인데, 외국인 아내가 있고 나이도 남편이랑 비슷하고.. 취해서 그런지 남편을 보는 눈이 애틋했던 ;;
오케스트라라는 집단은 참 특수한 것 같습니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특수한 형태의 직장. 그래서 맡은 연주를 잘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다 보니 그 집단에 잘 융화되는 것도 참 중요해요. 동료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연주라는 섬세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서로 감정 상하는 일도 없어야 하죠. 싫어하는 혹은 불편한 사람과 같이 연주해야 하는 것만큼 곤욕인 일도 없으니까요.. 남편도 모든 동료들과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걸 결국에는 잘 해결해냈기 때문에 만장일치라는 결과를 낸 것 같습니다.
외국인에게 그래도 좀 더 열려있는 독일에 비해 오스트리아는 보수적인 오케스트라가 많습니다. 물론 오케스트라 그리고 악기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몰도바라는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비엔나의 오케스트라의 당당한 종신단원이 된 남편, 오늘은 조금 자랑하고 싶네요. 더불어 해외에서 오케스트라 취업을 하시려는 한국분들에게도 이 글이 뭔가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
관련 글:
'🇦🇹 오스트리아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스트리아 마트에서 처음 사본 것들 :: 크뇌델, 밤잼, 해초빵 (9) | 2021.03.28 |
---|---|
코로나 자가테스트 키트 첫 사용 그리고 앙상블 녹음 (5) | 2021.03.27 |
여기도 방심할 수 없는 호객행위 :: 비엔나의 재래시장 나쉬마켓 (4) | 2021.03.23 |
방대한 문화유산의 성지, 빈 예술사 박물관 #2 쿤스트캄머, 갤러리 (5) | 2021.03.22 |
오랜만에 라이브 연주를 듣다. (3) | 2021.03.21 |
댓글